마지막 글. 감사합니다.


 공백기가 길었지만, 그래도 마침표를 찍는 마음으로 쓴다. 

 그 동안 시험을 쳤고, 여행을 다녀왔고, 일상으로 돌아왔다. 시험은 무척 힘들었다. 몸과 마음이 힘든 것도 있었고, 공부하는 날마다 지난 세월 속의 실패가 떠올라 더 힘들었다. 아직 결과 발표를 기다리고 있다. 정서적으로 건강한 사람들 틈에 섞여 근근이 버티며 시험을 칠 수 있었다. 그들에게 폐를 끼친 것 같아 미안하고, 다른 한편으로 무척 감사하다. 

 여행은 프랑크푸르트, 리스본, 포르투, 파리 네 도시를 25일 동안 다녀왔다. 유럽 땅을 처음 밟아보거니와, 계획 없이 혼자 떠난 첫 여행이었다. 사고나 소매치기 당하는 일 없이 운 좋게 잘 다녔다. 작년이 여러모로 고난의 해였던 것을 실감했다. 프랑크푸르트에서는 사람들을 만나며 푹 쉬었고, 리스본에서는 처음으로 대서양 바다를 보았고, 잊을 수 없는 해물밥을 먹었으며, 진주 귀걸이를 하나 샀다. 포르투에서는 호스텔 인근에 사시는 포르투 할아버지와, 코스타노바의 거칠고 큰 파도를 잊을 수가 없다. 코스타노바에서 죽고 싶은 마음을 버리고 왔다. 파리에서는 유치하게 거대한 관람차도 타 보고, 튈르리 정원과 뤽상부르 공원을 즐겼다. 금전적으로는 가서는 안 되었는지도 모르지만, 가난하고 기분 좋은 여행을 했다.

 인생은 기묘하다는 생각을 하는 요즘이다. 학교에 다닐 때에는 그토록 노력해도 열리지 않아 시험 칠 무렵에는 사실상 포기했던 분야가, 아무 기대 없이 여행을 다녀온 지금 미친 듯이 가까워져 온다. 내가 바라는 형태는 아니더라도 원하는 방향으로는 흘러가게 되는 요즘의 기운이 신기하다는 생각을 한다. 삶은 한 치 앞을 볼 수가 없구나. 

 그리고 여행 다녀와서 인생 정리를 좀 했다. 소지한 물품도 정리하고, 가입한 웹사이트들도 정리하고, 사람들도 정리했다. 작년 시험 준비를 하던 때 여자들의 우정 운운하면서 뒤에서는 행동이 달랐던 친구와 관계를 끊었다. 원래 성격이 무른 편이었는데 조금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더불어 '감정의 쓰레기통'이 되거나 누군가를 그렇게 대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한다. 

 블로그를 계속 하고 싶기는 한데, 이제 이글루스에서는 내가 좋아하던 사람들이 다 떠나가 버려서 워드프레스 등으로 옮겨가야 하나 고민된다. 아이디어는 많은데 아직 구체적으로 어떻게 할 지는 모르겠다. 사진을 진지하게 해 보라는 사람도 있어서 조금씩 연습도 하면서 글쓰기도 연습할 생각이다. 그 동안 책을 오랫동안 읽지 못해서 아직 읽는 것이 어색하다. 스트레스 없이 책도 읽고, 시험 전에 해 보고 싶었던 일들(답십리 땡큐센터 방문, 고속터미널 꽃 시장 가 보기 등)을 하나씩 하면서 기쁨을 느낀다. 

 이전의 삶의 모습들 중 마음에 안 들었던 부분들을 지우면서 좋아하는 사람들과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도록 노력해야지. 그리고 나를 건강하게 해 주는 사람과 환경을 가까이 하며 지내겠다고 다짐한다. 

 그 동안 허접한 글 모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블로그 옮기게 되면 여기에 남길게요.








140622 DAILY


 글보다는 일기가 많아졌다. 글에 대한 생각은 많은데, 예전보다는 해야 할 일에 대한 의무감에 더 쉽게 순응하고 있다. 실은 마음에 드는 글을 읽을 수 있게 되면 굳이 글을 쓰려 하지 않는다. 그런데 외롭고 씁쓸해서 위안이 될 만한 모든 자료들을 찾아도 찾을 수 없을 때, 몰입할 수 있는 매력 있는 글을 읽을 수 없을 때 비로소 찌질하게 일기를 쓴다. 오후에는 오래간만에 '독신으로 살겠다'라는 웹툰을 정주행했다.
 
 '독신으로 살겠다'라는 웹툰은 작년 하반기에 어느 친구가 추천해줘서 보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나이 든 여자들의 자극적인 욕망만 늘어놓는 만화인가 싶어 조금 보다가 그만 두었다. 그런데 그 후 심심해서 다시 이어 보다 보니 징그러워보였던 인간관계에서도 정감이 느껴지고, 실은 육체적 욕망뿐이 아니라 정서적 욕구에 대해서도 깊이 다루고 있는 만화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무엇보다 서른 즈음에 주변에서 쉽게 내뱉는 피상적인 명제들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하는 힘을 갖고 있었다. 여자들에게 '너는 어떻게 살고 싶은 거니, 정말로' 하고 묻는 가식 없는 언니 같은 만화다.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 건지. 속칭 '주류적이고 모범적인 삶'에서 한 걸음 비껴 서서 즐겁게 살고 싶은데, 취향이 다른 사람들의 오지랖이 싫어 혼자 있다 보면 외로워진다. 그리고 내 주변에는 모범적인 삶에 대한 열망이 강한 남자와 여자들이 많다. 남들이 우러러보는 성공한 삶. 나에게 실은 너도 그걸 원하지만 그걸 가지려면 너무 힘드니까 정신승리하는 것이 아니냐는 투로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면 이해 받지 못하는 기분이 들어 입을 다물게 된다. 



 아, 오전에는 '바베트의 만찬'이라는 프랑스/덴마크 영화를 보았다. 줄거리가 평범한데도 잔잔한 감동이 있어, '카모메 식당' 봤을 때와 같은 신기한 기분을 느꼈다. 덴마크나, 종교에 전혀 관심이 없었는데도 어느 새 그들에게 마음을 열고 있었다. 좋은 이야기에는 굳이 많은 장식이 필요하지 않구나.



 이글루스 로그인이 복잡해져서 싫어진다. 워드프레스로 옮길까. 익숙하고 여전히 좋은 감성의 소유자들이 조금은 남아 있는 곳이긴 한데, 이제는 그 망국의 백성으로 사는 것만 같은 상실감이 싫다. 법대가 없어진 이후 동기들과 후배들을 보며 그 안쓰러움을 계속 맛 보면서도 안 그런 척 새 시대를 이끌어갈 눈빛이 초롱초롱한 학생인 것 같은 인상을 풍겨야 하는 현실 때문에 싫어졌다. 얼마 전 발표 후 모 교수님과 발표자들만 모여 술을 마시던 날, 평소에는 적당히 숨겨 왔던 그 상실감과 스산한 기분을 솔직히 꺼내놓을 수 있었기 때문에 그토록 새벽까지 술을 마시지 않았나 싶다. 



 사람과의 관계를 정리하는 것은 힘들다. 이상한 사이였지만 내가 끝내버리기 위한 행동을 취하기 이전에 우리 사이에 존재했던 활력이 그립다. 하지만 그 팽팽한 긴장은 어떤 방향으로든 없어질 것이었다. 나는 그 관계를 통해 내가 감정에 많이 서툴다는 것을 배웠다. 아직은 그의 영향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채, 스스로의 한심함(pathetic함)을 곱씹는 중이다. 그런데도 내 안에 무언가는 계속 이 관계를 끊지 말라고 충동질한다. 어리석은 짓을 이제는 좀 안 하겠지 싶으면 또 하고 있고, 미련하다. 이런 상실감도 외로움에 얹어져 그 기분을 더욱 주저앉힌다. 



 그래도 또 살아야지. 솔직히 희망도 의미도 없는 우울함에 휩싸여 있지만, 적어도 이제 과제만 내면 학교는 안녕이니까.



140527 바라건대, DAILY

 벵갈 고양이를 키우고 싶다. 물을 좋아하고 사람을 가리지만 야생성이 남아 장난기가 심하다는 벵갈 고양이, 보고만 있어도 기분이 좋아질 것이다. 비싼 가격 때문에 업자들이 상품처럼 거래하고 있다는 점이 조금 걸리지만 감정 표현도 풍부하고 영리하다니 더욱 키우고 싶다. 고양이를 키우려면 경제력을 갖춰야 하고, 애완동물을 키울 수 있는 집으로 옮겨야 하고, 지금처럼 물건들이 너저분하게 책상이나 곳곳에 흩어져 있어서는 안 된다. 아마 옷도 모두 옷장 속에 넣을 수 있도록 정리되어야 할 것이다.

 일요일마다 (아무리 허접하더라도) 글을 한 편씩은 쓰리라 마음 먹었는데, 지난 일요일에는 취업 면접 때문에 기운을 다 소진했다. 오늘은 조금 여유를 부리겠다며 지난 번에 충동구매한 다홍색 머플러를 목에 둘러보았다. 옷장에 검정, 남색, 회색 계열의 옷이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고 있어 늘 색감의 영역을 확장해 보리라 벼르고 있었는데, 원피스 또는 여름 자켓을 사러 들어간 매장에서 심심풀이로 목에 두른 이후로 손에서 놓지를 못했다. 평범한 듯 고급스럽고 화려해서 사지 않을 수 없었다. 기분이 좋아진다. 아침에 머플러를 한 모습을 거울 속으로 들여다보며, 학교 웹진에 보내주기로 했던 글에 대한 새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The Paris Review에 실렸던 도리스 레싱의 인터뷰를 읽었는데 참 즐거웠다. 글로 기록된 대화인데도 이렇게 계속 읽고 싶어지다니, 그런 대화에 샘이 났다. 도리스 레싱의 다섯째 아이만 읽어보았었는데, 기괴한 이야기를 얌전하게 잘 쓴다는 느낌을 받았다.

 제주도 여행을 가고 싶다. 이탈리아 여행도 하고 싶다. 태국 여행도 하고 싶지만 현재 정치적 상황을 보면 어떨지 모르겠다. 살이 빠져 건강이 돌아왔으면 좋겠고, 지금 길들이기 시작한 운동 습관이 정착되었으면 좋겠다. 색깔이 화사한 예쁜 옷들을 입고 잘 꾸민 채로 바깥을 나다니고 싶다. 바라는 것과 그것을 구현하는 것은 참 다르다.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무언가를 바랄 수 있다. 원하는 바가 많을수록 머리가 복잡해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실천에 옮기는 과정에서는 욕망이 현실 또는 다른 욕망에 의해 다듬어지며, 끝에 이르면 매우 단순해지기도 한다. 

 시간 관리를 잘 못하는 것 같아 스트레스를 받고는 있다. 하지만 이제는 매일 일정한 시각에 일어나고 아침마다 우울해하지 않아 참 다행이다. 이렇게 한 걸음씩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찾아 나서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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